미르(МИР)란 'Mission Jesus in Russia'의 러시아 약자(Миссия Иисус в России)로서, 평화 혹은 세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르 선교회는 1996년 6월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사역하던 몇몇 한인 선교사들이 러시아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목표로 선교지 현장에서 결성한 초교파 선교단체입니다.

젊다는 것도 유감

Posted on 오후 7:32 | By 류창현 | In

“말라도이 체라백!”(“젊은 사람! “) 이라고 누가 부른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정말 나보다도 훨씬 젊은 여자가 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씩, 금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다. 자신이 들고 있는 가죽 잠바를 들어 보이면서, 잘 맞겠는데 사지 않겠느냐고 한다. 필요 없다고 하니, 아주 싸게 주겠다고 한다. 사실 좋아 보였는데, 값도 싸고, 단순히 목사에게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러시아에서 나는 늘 <젊은 사람>으로 불린다. 이제는 나도 불혹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기에서는 어떻게 된 판인지 항상 젊은 사람이다. 사실은 젊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그러니 그렇다. 그렇다고 나보고 <늙은 사람>이라하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니 이해도 간다.

여기서는 사람을 부르는 것이 참 원색적이다. 남자! 여자!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그러다보니 나보다도 젊은 사람이 나보고 “젊은 사람! ‘혹은 ”남자!“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듣는다. 시장에 가면 여기저기서 물건 파는 이들이 < 젊은 사람!><남자>라 부른다. 우리의 문화적 개념으로 보면 영 기분 나쁜 호칭이다. 이런 호칭은 공산주의 시절 <따바리쉬>라고, 번역하면 <동무!>라고 하는 호칭이 페스토이카 이후 사라지면서 더 불려지는 호칭이다.

말이지만 젊다고 하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고, 더욱이 나보다 더 젊은 사람이 나를 <젊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내가 왜 젊은 사람이냐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만약 나이 드신 분이 그렇게 불렀다면 수긍할 수 있으리라. <젊다>고하여 주는데 뭐 나쁘겠나. 나이 든 사람이 부르면 어떻고, 젊은 사람이 부르면 어떤가? 이것은 내가 가진 우리의 문화적 잣대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목사가 검은 가죽잠바를 입으면 안 되는가? 이것도 일종의 버려야 할 고정관념이다. 늙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아래에 요한과 마리아를 내려다보며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다 했다.”(요19:26) 여기에서 당시 여성의 호칭 “여자여”는 여성에 대한 존칭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여자여! 이것 얼마요?“하고 물건 파는 여자를 불러 물어 본다. 아가씨라고 부르기는 좀 나이가 많기에, 그렇다고 한국식으로 <아주머니!> 하기는 더욱 여기에서는 안 어울리는 호칭이다.

하기는 이곳만큼 이름을 쉽게 부르는 곳도 없다. 초면이라도 이름을 모르면 기어이 이름을 물어보고 이름을 호칭한다. 여기에서는 형제간에 남매간에도 서로 부르는 호칭은 이름이다. 선생님도 직책상의 호칭보다는 이름으로 부른다. 주일학교의 6살짜리도 대학생 주일학교선생님의 호칭은 선생님이 아니라 이름이다. 다만 윗사람이나 어른에게는 부칭이라 하여 그 사람의 아버지의 이름을 덧붙이는 것이 예의이다.

문화는 이런 것이다. 이해하면 정답고, 이해하지 못하면 껄끄러운 것이다. 마치 남의 옷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