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МИР)란 'Mission Jesus in Russia'의 러시아 약자(Миссия Иисус в России)로서, 평화 혹은 세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르 선교회는 1996년 6월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사역하던 몇몇 한인 선교사들이 러시아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목표로 선교지 현장에서 결성한 초교파 선교단체입니다.

비자인생

Posted on 오후 8:05 | By 류창현 | In

비자인생

k 선교사님이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며칠 전 나갔다 오셨고, J선교사님이 비자를 위해 가족과 함께 핀란드로 나가셨다. ㅅ 선교사님은 "우리는 비자 인생입니다"라고 했다. 사실 비자에 러시아 거주의 목을 걸어놓고 있으니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1년 짜리 비자가 3개월로 줄었다. 그래 그게 어디냐고 종교비자를 내 주는 선교지가 그리 많으냐고 감지덕지 하기도 한다.
언제가 비자를 받기 위해 밤늦은 시간 가족들과 간단한 여행 가방하나 챙긴 체 러시아를 떠나던 그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비자를 받기위해 가족들과 함께 제 삼국으로 나가는 모습은 자신이 보기에도 안쓰러워 기분이 우울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여행을 위해 나간다면 즐거웠을 이 길이 기한이 되어 쫓겨나간다 생각하니 남의 땅에 사는 이방인의 아픔이 이슬처럼 몸을 적셔온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속도 모르고 무슨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마냥 즐겁다. 즐거운 것은 그들대로 속셈이 따로 있다. 러시아에서 벗어나 분위기가 다른 삼국으로 가면 러시아에 없는 그런 물건을 살수 있다는, 여행지에서는 조금만 떼를 써도 사준다고 하는 뭐 그런 것일 것이다.

이번에는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이 타고 다니는 핀란드 헬싱키행 밤 버스를 타기로 했다. 차로 7시간정도의 거리이다. 초기 선교비 송금이 러시아 은행에서 되지 않아 핀란드 은행으로 받던 시절 두 달에 걸쳐 다니던 곳이라 국경 넘나드는 것은 별 낯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핀란드의 도시들은 손바닥 같이 뻔한 곳이기에 아이들과 달리 별 흥미도 없다.
버스는 보따리 상인들을 위하여 국경의 면세점마다 들러, 저들이 술이나 담배 등을 사게하고, 그들의 시간을 맞추기위해 느리게 운행된다.

새벽 6시에 헬싱키에 도착하면 그곳 시간은 5시이다. 겨울에 캄캄한 북구의 어둠은 이 작은 도시를 직누르고 고국에서처럼 새벽 해장국이라도 파는 그런 따듯한 음식점은 보이지 않는다.. 꼭 가야할 목적지도 없고 우리를 반겨 주는 곳은 없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두움과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며 그래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는 기차역 대합실이다.

러시아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를 자리를 거의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 의자의 조그만한 틈에 아이들을 앉히고 우리는 서성인다. 그곳에서 날이 밝기까지 두어 시간 기다려야 가게가 열리 것이고 어디 문을 일찍 여는 버스정류장 카페에서 따듯한 차와 빵이라도 사면 준비해온 김밥이라도 꺼내 아침요기를 대신할 것이다. 호텔비를 적약하기위해 밤 버스를 타고 온 주제에 어디 버젓한 음식점을 그 아침에 찾을 것인가.

사실 찾고자해도 그런 이른 아침에는 아무곳에도 문을 여는 곳이 없다. 미국 선교사들은 핀란드에 휴양소도 있다는 데,,,,그래서 휴가로 이곳에 머물다 가곤 한다는데...물가 비싼 핀란드에 우리 저 소득 국가 선교사는 주눅들고, 그 어디에도 개폐된 화장실은 없고. 화장실 출입에 일 달러 정도의 비싼 요금에 기가죽어 한번 동전투입 후 모두가 들어가는 요령아닌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면서도, 여기에 온 목적이 있기에 그렇게 유리하는 난민 처럼 서럽지는 않다. 그래서 낮에는 아이들대로 아이쇼핑 위해 백화점에 들어가고 우리 부부는 백화점 근처 겨울 공원에서 북구의 바람을 맞으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흘러 들어와서 말로만 듣던 헬싱키의 앞 바다를 바라보는가? 수많은 모터보트가 겨울잠을 자는 항구에서 내 조국의 바다바람 향수를 찾으며 피곤한 시간을 죽인다.

이번 비자를 위해 가족 전부 초청장 밥급받고 비자비용도 급행으로하여 웬만큼 비싼가? 합하면 한달 생활비를 완전히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비 어디에도 비자를 위한 경비항목이 없잖은가? 생각하면 입이 쓰다. 돌아오는 길은 하루의 피곤을 풀기위해서라도 기차를 타고 온다. 기차는 그날 밤늦은 시간 우리를 페테스부르그로 데려다 준다. 국경을 통관하는 일은 이제 이력이 나서 초기 국경을 넘나들 때의 어떤 긴장감도 없다. 삼국에 나갔다 블랙 리스트에 올려져 선교지로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선교사도 생겨났다는데, 그저 잘되겠지 주님이 동행하시는 길인데...하며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사역지로 들어온다.

이것을 앞으로 3개월마다 치러야 한다는 것은 전쟁이다.

* 이 게시물은 2006년도 이전 미르 선교회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