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오후 11:12 | By 류창현 | In 류창현 선교사의 선교단상
부활절 이야기
러시아에서는 좋던 싫든 우리는 두 번의 부활절을 맞이한다. 마치 한국에서처럼 <양력설> <음력설> 지내듯 그렇게 말이다. 이는 러시아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부활절을 지키고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부활절을 지키기 때문이다.
부활절 교회력을 이야기하자면 참 복잡하다. 그러기에 아직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날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는 2세기 후반부터 논쟁하였는데,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약의 유월절과 같이 조명하므로 부활절은 달력으로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연결하여 지키게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어는 유월절과 부활절 명칭을 <빠스하>란 동의어로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월력을 지킴에 따라 매달은 초승달로 시작한다. 이에 유대인들은 새해를 Nisan월로 시작하고 이 Nisan월 14일 즉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 유월절을 지킨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이 음력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주중의 날에 관계없이 유월절 3일 후에 지켜졌다. 이들은 성금요일을 Nisan월 14일이라 믿었다. 이에 따르면 한 예로서 성 금요일(Nisan월 14일)이 당해 화요일로 되면 부활절은 목요일에 지켜졌야 했다. 이에 반해 서방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일요일 즉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 분쟁은 325 년 니케아 회의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는 달과 주중의 날이 다 인정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때에 온다는 것과 또 언제나 주일에 온다함을 양측에 확증시켜주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대, 주전 약 46년부터 사용하였던 것으로 태양력(양력)의 길이를 365와 1/4로 계산하였는데, 즉 365일 6시를 1년으로 하고 4년마다 하루의 윤일(閏日)을 둔 것으로, 이것은 11분 수초가 부족한 것이었다. 이러한 매년의 착오는 햇수가 늘어감에 따라 1582년에 춘분이 니케아 회의 당시인 A.D.325년에 일어났던 것보다 10일이나 빠른 3월 11일에 일어났다. 이에 서방교회 그레고리 교황은 1582년 3월 1일에 교서를 내려 10일을 폐기하고 1582년 10월 5일을 10월 15일로 변경하게 되었다. 뒤바뀌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400년 동안에 3회의 윤년을 평년으로 간주하기로 하였다. 평년으로 간주되어야 할 윤년은 세기를 끝맺는 연도로서 400으로 분할될 수 없는 해를 말한다. 이와 같은 조정 방법을 일컬어 그레고리력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곧 현행의 태양력이다. 그러나 서로 갈라져 있었던 동방교회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어떤 선교사님은 러시아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면에서 저들과 같이 부활절 절기를 지키기도 한다. 러시아 현지 개신교도 부활절 일이 통일 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선교사들이 열띤 토론을 해 보지만 어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2001년 개신교와 정교회의 부활절이 일치는 되는 해를 맞이했었다. 이렇게 일치하는 해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이렇게 일치하는 해를 기해 세계교회 협의회 등 유럽의 교회 협의회 같은 세계교회 공동체가 러시아 정교회와 부활절 일치를 부르짖고 있지만 정교회는 니케야 회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을 교회의 최고의 전통으로 여기기 때문에 개신교가 양보하지 않는 한 변수는 없을 것 같다
매년 러시아에서는 개신교가 앞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지만 분위기는 늘 설렁하다. 정교회는 부활절을 교회 명절 중 가장 큰 절기로 지키기 때문에 분위기가 고조되어 개신교 교인 중에는 이중으로 부활절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부활절 절기에 따라 색칠한 계란도 나누고 하지만 이어 러시아 정교회 부활절에도 어떤 성도들은 손수 색칠한 계란을 가지고 와서 목사에게 선물한다.
“‘부활절 지났잖아요? 하면“ ”러시아에서는 오늘이 부활절입니다“라고 하여 목사의 얼굴을 붉히게 한다. 그런데 달걀을 왜 나누어주는지 그 유래에 대해 모르는 성도들이 많다. 달걀의 부활 이미지는 죽은 듯이 보이는 달걀 속에 생명이 있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는 새 생명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부활절이 되면 예쁜 색깔로 물들인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 유래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자린드]라는 부인이 남편이 전쟁에 나간 뒤 나쁜 사람들에게 집을 빼앗겨 먼 산골 마을에 가서 피해 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딱한 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부인은 그 친절에 보답하는 뜻으로 부활절에 마을 아이들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 달걀에는 부인이 직접 쓴 '하나님의 사랑을 믿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로자린드 집안의 가훈이었다. 어느 해 부활절 날, 부인은 길에서 병든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어린 소년을 만났다. 부인은 그 소년을 위로하고 가지고 있던 색 달걀 하나를 주었다. 부인과 헤어진 그 소년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중에 한 산골에서 병든 군인을 만나게 되었다. 소년은 군인을 보살펴주고 로자린드 부인에게 받았던 달걀을 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군인은 그 달걀에 적힌 글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바로 자기 집안의 가훈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인은 그 소년에게 물어서 결국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그 후에도 해마다 부활절이면 자신의 남편을 찾아준 색 달걀을 이웃들에게 나눠어 주었고 이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에도 부활절이면 부활의 메시지가 담긴 색 달걀을 나누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보다는 구원에 관한 예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물론 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고난 주간과 함께 지켜졌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부활절과 관련되어 많은 관습들이 생겨났다. 어떤 것은 기독교적인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사제들이 부활절 전날에 교인들의 각 가정들을 찾아가 부활절 음식에 축복하여 주는 관례가 남아 있다. 이는 원래 오랜 수난절 금식 기간 동안에 금지되었던 음식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일부 중세기 교회에서는 수난절 초에 강단에 묻어 놓았던 관에서 혹은 성 금요일에 안치한 관에서 그리스도의 초상이나 십자가 등을 꺼내는 관습이 행하여졌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부활절에 달걀 염색과 달걀 굴리기가 행해졌다. 이는 예수님의 동굴 문이 굴러 열려음을 상징한다.
러시아에서의 오랜 전통 중 부활절 음식으로는 특별히 “쿠리치”라고 하는 둥근 케이크 빵을 나누어 먹는데 이는 케이크 빵에 초를 세워 장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웃과 나눌 때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습니다.” 인사하면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는 말로 답례하는 것은 부활절 풍습에 있어서 월등한 것이다.
이번 4월 12일은 서방교회, 19일은 정교회 부활절이다. 어느 날이든 누구나 예수 부활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축제가 되면 좋겠다.
러시아에서는 좋던 싫든 우리는 두 번의 부활절을 맞이한다. 마치 한국에서처럼 <양력설> <음력설> 지내듯 그렇게 말이다. 이는 러시아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부활절을 지키고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부활절을 지키기 때문이다.
부활절 교회력을 이야기하자면 참 복잡하다. 그러기에 아직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날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는 2세기 후반부터 논쟁하였는데,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약의 유월절과 같이 조명하므로 부활절은 달력으로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연결하여 지키게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어는 유월절과 부활절 명칭을 <빠스하>란 동의어로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월력을 지킴에 따라 매달은 초승달로 시작한다. 이에 유대인들은 새해를 Nisan월로 시작하고 이 Nisan월 14일 즉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 유월절을 지킨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이 음력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주중의 날에 관계없이 유월절 3일 후에 지켜졌다. 이들은 성금요일을 Nisan월 14일이라 믿었다. 이에 따르면 한 예로서 성 금요일(Nisan월 14일)이 당해 화요일로 되면 부활절은 목요일에 지켜졌야 했다. 이에 반해 서방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일요일 즉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 분쟁은 325 년 니케아 회의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는 달과 주중의 날이 다 인정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때에 온다는 것과 또 언제나 주일에 온다함을 양측에 확증시켜주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대, 주전 약 46년부터 사용하였던 것으로 태양력(양력)의 길이를 365와 1/4로 계산하였는데, 즉 365일 6시를 1년으로 하고 4년마다 하루의 윤일(閏日)을 둔 것으로, 이것은 11분 수초가 부족한 것이었다. 이러한 매년의 착오는 햇수가 늘어감에 따라 1582년에 춘분이 니케아 회의 당시인 A.D.325년에 일어났던 것보다 10일이나 빠른 3월 11일에 일어났다. 이에 서방교회 그레고리 교황은 1582년 3월 1일에 교서를 내려 10일을 폐기하고 1582년 10월 5일을 10월 15일로 변경하게 되었다. 뒤바뀌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400년 동안에 3회의 윤년을 평년으로 간주하기로 하였다. 평년으로 간주되어야 할 윤년은 세기를 끝맺는 연도로서 400으로 분할될 수 없는 해를 말한다. 이와 같은 조정 방법을 일컬어 그레고리력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곧 현행의 태양력이다. 그러나 서로 갈라져 있었던 동방교회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어떤 선교사님은 러시아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면에서 저들과 같이 부활절 절기를 지키기도 한다. 러시아 현지 개신교도 부활절 일이 통일 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선교사들이 열띤 토론을 해 보지만 어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2001년 개신교와 정교회의 부활절이 일치는 되는 해를 맞이했었다. 이렇게 일치하는 해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이렇게 일치하는 해를 기해 세계교회 협의회 등 유럽의 교회 협의회 같은 세계교회 공동체가 러시아 정교회와 부활절 일치를 부르짖고 있지만 정교회는 니케야 회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을 교회의 최고의 전통으로 여기기 때문에 개신교가 양보하지 않는 한 변수는 없을 것 같다
매년 러시아에서는 개신교가 앞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지만 분위기는 늘 설렁하다. 정교회는 부활절을 교회 명절 중 가장 큰 절기로 지키기 때문에 분위기가 고조되어 개신교 교인 중에는 이중으로 부활절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부활절 절기에 따라 색칠한 계란도 나누고 하지만 이어 러시아 정교회 부활절에도 어떤 성도들은 손수 색칠한 계란을 가지고 와서 목사에게 선물한다.
“‘부활절 지났잖아요? 하면“ ”러시아에서는 오늘이 부활절입니다“라고 하여 목사의 얼굴을 붉히게 한다. 그런데 달걀을 왜 나누어주는지 그 유래에 대해 모르는 성도들이 많다. 달걀의 부활 이미지는 죽은 듯이 보이는 달걀 속에 생명이 있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는 새 생명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부활절이 되면 예쁜 색깔로 물들인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 유래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자린드]라는 부인이 남편이 전쟁에 나간 뒤 나쁜 사람들에게 집을 빼앗겨 먼 산골 마을에 가서 피해 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딱한 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부인은 그 친절에 보답하는 뜻으로 부활절에 마을 아이들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 달걀에는 부인이 직접 쓴 '하나님의 사랑을 믿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로자린드 집안의 가훈이었다. 어느 해 부활절 날, 부인은 길에서 병든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어린 소년을 만났다. 부인은 그 소년을 위로하고 가지고 있던 색 달걀 하나를 주었다. 부인과 헤어진 그 소년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중에 한 산골에서 병든 군인을 만나게 되었다. 소년은 군인을 보살펴주고 로자린드 부인에게 받았던 달걀을 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군인은 그 달걀에 적힌 글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바로 자기 집안의 가훈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인은 그 소년에게 물어서 결국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그 후에도 해마다 부활절이면 자신의 남편을 찾아준 색 달걀을 이웃들에게 나눠어 주었고 이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에도 부활절이면 부활의 메시지가 담긴 색 달걀을 나누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보다는 구원에 관한 예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물론 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고난 주간과 함께 지켜졌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부활절과 관련되어 많은 관습들이 생겨났다. 어떤 것은 기독교적인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사제들이 부활절 전날에 교인들의 각 가정들을 찾아가 부활절 음식에 축복하여 주는 관례가 남아 있다. 이는 원래 오랜 수난절 금식 기간 동안에 금지되었던 음식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일부 중세기 교회에서는 수난절 초에 강단에 묻어 놓았던 관에서 혹은 성 금요일에 안치한 관에서 그리스도의 초상이나 십자가 등을 꺼내는 관습이 행하여졌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부활절에 달걀 염색과 달걀 굴리기가 행해졌다. 이는 예수님의 동굴 문이 굴러 열려음을 상징한다.
러시아에서의 오랜 전통 중 부활절 음식으로는 특별히 “쿠리치”라고 하는 둥근 케이크 빵을 나누어 먹는데 이는 케이크 빵에 초를 세워 장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웃과 나눌 때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습니다.” 인사하면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는 말로 답례하는 것은 부활절 풍습에 있어서 월등한 것이다.
이번 4월 12일은 서방교회, 19일은 정교회 부활절이다. 어느 날이든 누구나 예수 부활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축제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