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오후 8:19 | By 류창현 | In 류창현 선교사의 선교단상
자신을 사막 한 가운데 두어 보시지요.
최근 이집트의 사막교부에 관련한 글을 읽고, 삶의 지평에서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3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이집트의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사막교부들이라고 칭한다. 그들은 모든 인간적인 편리와 안락을 포기하고 사막으로 물러나 극히 단순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사막의 모토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5:8)이다.
현대인들이 볼 때 사막교부들의 이상은 비현실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 복잡하다. 생각과 활동도 뭐 하나 단순치 않고, 복잡하다. 복잡하다 못해 나 자신이 삶에 포로가 되어 있다싶이 한다.
쉽게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치루고 있는 홍역의 미르선교 센터 구입건만해도 그렇다. 건물의 부분 한층 사는데도 왜 그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서로의 의심의 눈길과 생각과 속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뭉쳐져서 마치 괴물이된 것 같은 나를 보게 된다.
마켓에 가서 단순히 물건 하나 사며 값을 치르는 그런 단순함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큰돈이 걸려 있는데서는 어림없다. 많은 돈 강탈당하지 않을 까 조바심하며 등기 이전 마지막까지 왔는데 아직도 우리는 밀고 당기고 신경전이다. 속이려는 자에게 속지 않겠다고 하는 열심이 증오심으로 분노로 얼룩져 우리 마음에 서로 평안이 없음을 본다.
요즈음 나 자신이 사막으로 들어 갈 수는 없지만 생활의 주변을 사막화 해보려고 노력해 본다. 될 수 있는 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떠나고, 육체적인 삶의 활동을 줄이고, 먹고 쓰고자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철저한 절제이다. 이것은 예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두고 있던 생각이 구체화 된것이리라.
그것은 수도자들이 자신을 봉쇄된 수도원 작은 방에 자신을 감금시키고 마음 안에서 솟아오르는 복잡한 생각들로 인한 모든 불결함을 피하고 정화된 마음에 하나님이 조명하시는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처럼, 자신을 먼저 주변의 사물로부터 감금시키는 것이다.
얼마후 수도사들이 사막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깨닫는 것은, 몸은 세상을 버렸지만 마음 안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쌓여 있음을 , 그래서 수도 생활의 승패는 이 생각을 어떻게 통제하고 절제하는 가에 달려 있음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사막교부 중 한 사람인 존 시릭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형제들아 우리가 세상에서 달아 났던 것 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육체의 욕망에서 달아나야 한다."
그러나 수도자의 생활은 홀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과정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동행하는 길이었다. 왜냐하면 수도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깨닫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주님을 의지해야 했다.
믿는 자는 삶의 방식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에서조차 청결이 요구되어 진다고 할 때, 이와 같이 사막 교부들이 얻으려고 했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며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싶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요17:16) 그리고 자신에게 속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요20: 21) 하셨다. 이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과 이 세상 보냄을 받음의 긴장 가운데 참된 평강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선교사로 나왔을 때는 세상을 버렸다고 생가했는데 (사실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었다), 여전히 마음에 세상을 담고 사는 내 자신을 보며, 사막교부들이 경험하며 얻고자 했던 그 내면의 처절한 투쟁을 공감하고,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쯤 사막에 갖다두는 영성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내가 보이지 않거든 사막에 간 줄 알라.
* 이 게시물은 2006년도 이전 미르 선교회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최근 이집트의 사막교부에 관련한 글을 읽고, 삶의 지평에서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3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이집트의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사막교부들이라고 칭한다. 그들은 모든 인간적인 편리와 안락을 포기하고 사막으로 물러나 극히 단순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사막의 모토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5:8)이다.
현대인들이 볼 때 사막교부들의 이상은 비현실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 복잡하다. 생각과 활동도 뭐 하나 단순치 않고, 복잡하다. 복잡하다 못해 나 자신이 삶에 포로가 되어 있다싶이 한다.
쉽게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치루고 있는 홍역의 미르선교 센터 구입건만해도 그렇다. 건물의 부분 한층 사는데도 왜 그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서로의 의심의 눈길과 생각과 속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뭉쳐져서 마치 괴물이된 것 같은 나를 보게 된다.
마켓에 가서 단순히 물건 하나 사며 값을 치르는 그런 단순함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큰돈이 걸려 있는데서는 어림없다. 많은 돈 강탈당하지 않을 까 조바심하며 등기 이전 마지막까지 왔는데 아직도 우리는 밀고 당기고 신경전이다. 속이려는 자에게 속지 않겠다고 하는 열심이 증오심으로 분노로 얼룩져 우리 마음에 서로 평안이 없음을 본다.
요즈음 나 자신이 사막으로 들어 갈 수는 없지만 생활의 주변을 사막화 해보려고 노력해 본다. 될 수 있는 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떠나고, 육체적인 삶의 활동을 줄이고, 먹고 쓰고자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철저한 절제이다. 이것은 예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두고 있던 생각이 구체화 된것이리라.
그것은 수도자들이 자신을 봉쇄된 수도원 작은 방에 자신을 감금시키고 마음 안에서 솟아오르는 복잡한 생각들로 인한 모든 불결함을 피하고 정화된 마음에 하나님이 조명하시는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처럼, 자신을 먼저 주변의 사물로부터 감금시키는 것이다.
얼마후 수도사들이 사막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깨닫는 것은, 몸은 세상을 버렸지만 마음 안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쌓여 있음을 , 그래서 수도 생활의 승패는 이 생각을 어떻게 통제하고 절제하는 가에 달려 있음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사막교부 중 한 사람인 존 시릭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형제들아 우리가 세상에서 달아 났던 것 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육체의 욕망에서 달아나야 한다."
그러나 수도자의 생활은 홀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과정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동행하는 길이었다. 왜냐하면 수도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깨닫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주님을 의지해야 했다.
믿는 자는 삶의 방식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에서조차 청결이 요구되어 진다고 할 때, 이와 같이 사막 교부들이 얻으려고 했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며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싶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요17:16) 그리고 자신에게 속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요20: 21) 하셨다. 이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과 이 세상 보냄을 받음의 긴장 가운데 참된 평강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선교사로 나왔을 때는 세상을 버렸다고 생가했는데 (사실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었다), 여전히 마음에 세상을 담고 사는 내 자신을 보며, 사막교부들이 경험하며 얻고자 했던 그 내면의 처절한 투쟁을 공감하고,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쯤 사막에 갖다두는 영성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내가 보이지 않거든 사막에 간 줄 알라.
* 이 게시물은 2006년도 이전 미르 선교회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