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오후 7:27 | By 류창현 | In 류창현 선교사의 선교단상
승전 기념일
오늘은 5월 9일, 러시아의 승전 기념일이다. 이날은 독일과의 1941~1945년의 긴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다. 매년 이날은 큰 축제가 벌어진다. 날씨도 봄의 적당히 따스한 기온이다. 전쟁 참전 용사들이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노구에도 불구하고 긴 거리의 행진이 있다.
할머니들도 할아버지 못지않게 가슴에 훈장을 달고 행진하므로 당시 전쟁이 결코 남자들만의 싸움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은 페레스토로이카 이전에 만들어진 당시 상황들을 재연한 전쟁 영화들이 상영되고 당시 군가들이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들이 불려진다. 당시에 전사한 전사자의 묘는 수많은 꽃들로 뒤덮인다. 모스크바에서는 붉은 광장에서의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와 오후에 연주되는 승전축제에 수많은 인파로 도시는 술렁거린다. 이는 러시아 전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함께했던 구 소련권 전역이 축제로 들썩 거린다.
방송 매체에서는 참전 용사들이나 역사가들의 증언도 있다. 여러 행사들 중 밤 10시에 터뜨리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행사의 절정이다. 뻬쩨르부르그에서도 궁전광장의 축제와 도심을 흐르는 네바 강가에서의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도시민의 전부가 나왔는가 할 정도로 강변과 강을 있는 여러 다리에 인파로 인산인해다.
승리의 기쁨을 축하하는 행사 이면에는 역시 전쟁의 비참함과 아픔이 있음을 본다. 어쩌면 전쟁의 아픔을 이런 승전이라는 축제 속에 감추어 버리는지 모르겠다.
전쟁의 아픔을 노래한(이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것인데) <백학>의 노래 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혈의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 낯선 땅에 쓰러져 백학이 되었다는 생각이드네. 저들이 아득한 시간에 날아와 울부짖는 것은 우리가 자주 슬픔에 겨워 하늘을 바라보며 침묵에 젖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도시는 전쟁 기간 중 구백일을 독일군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었다. 말이 구백일이지 거의 2년 반을 포위되어 있었으니 당시의 상황이란 어떤 설명으로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포화와 기아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몸부림쳤던 당시 상황은 영웅적인 이야기 속에서나, 빛바랜 정지된 사진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포화 속에서 사실 굶주려 죽은 자는 얼마인가?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병들어 죽은 자는 얼마인지? 당시 육십 오만 명 죽었다고 전한다. 나무껍질을 넣은 빵을 씹으며 이 도시를 지켰기에 이 도시를 영웅도시라 한다. 포위망 속에서도 그때 식량이 들어 올 수 있는 루트가 있어서 이 길을 오늘 날도 “생명의 길”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 도시 사람들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의 초연의 연주무대를 도시 전역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참호속의 군인들과 함께 들었다고 한다. 42년 8월 9일의 일이다. 37년도 부터 이곳 음악원 교수로 있던 그는 전쟁이 있자, 방공포 대원으로, 소방요원으로 포탄이 떨어지고 동료가 죽어가는 참호를 누비며 이곡을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곡은 진혼곡으로 불려진다.
이 도시 구석구석에는 아직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시 건물의 파편의 흔적은 그렇다 치고 그 당시 이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 중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 아직 생존하여 있는 이들이 많아 전쟁의 아픔이 큰 도시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땅의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죽어갔는가!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들의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기 전에 한국전쟁을 동의 했으니 아이러니컬하다.
우리에게는 전쟁의 아픔은 있지만 승전의 그런 기쁨이 없었기에 이런 전쟁 승리의 축제 분위기가 낯설다. 러시아에서의 승전 기념일은 그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인지? 아니면 전쟁의 승리 자체에 대한 열광인지, 자랑인지?
나는 이방인으로 멀리 물러 앉아, 이 땅의 사람들이 이 날을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나누는 그런 날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은 5월 9일, 러시아의 승전 기념일이다. 이날은 독일과의 1941~1945년의 긴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다. 매년 이날은 큰 축제가 벌어진다. 날씨도 봄의 적당히 따스한 기온이다. 전쟁 참전 용사들이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노구에도 불구하고 긴 거리의 행진이 있다.
할머니들도 할아버지 못지않게 가슴에 훈장을 달고 행진하므로 당시 전쟁이 결코 남자들만의 싸움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은 페레스토로이카 이전에 만들어진 당시 상황들을 재연한 전쟁 영화들이 상영되고 당시 군가들이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들이 불려진다. 당시에 전사한 전사자의 묘는 수많은 꽃들로 뒤덮인다. 모스크바에서는 붉은 광장에서의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와 오후에 연주되는 승전축제에 수많은 인파로 도시는 술렁거린다. 이는 러시아 전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함께했던 구 소련권 전역이 축제로 들썩 거린다.
방송 매체에서는 참전 용사들이나 역사가들의 증언도 있다. 여러 행사들 중 밤 10시에 터뜨리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행사의 절정이다. 뻬쩨르부르그에서도 궁전광장의 축제와 도심을 흐르는 네바 강가에서의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도시민의 전부가 나왔는가 할 정도로 강변과 강을 있는 여러 다리에 인파로 인산인해다.
승리의 기쁨을 축하하는 행사 이면에는 역시 전쟁의 비참함과 아픔이 있음을 본다. 어쩌면 전쟁의 아픔을 이런 승전이라는 축제 속에 감추어 버리는지 모르겠다.
전쟁의 아픔을 노래한(이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것인데) <백학>의 노래 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혈의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 낯선 땅에 쓰러져 백학이 되었다는 생각이드네. 저들이 아득한 시간에 날아와 울부짖는 것은 우리가 자주 슬픔에 겨워 하늘을 바라보며 침묵에 젖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도시는 전쟁 기간 중 구백일을 독일군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었다. 말이 구백일이지 거의 2년 반을 포위되어 있었으니 당시의 상황이란 어떤 설명으로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포화와 기아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몸부림쳤던 당시 상황은 영웅적인 이야기 속에서나, 빛바랜 정지된 사진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포화 속에서 사실 굶주려 죽은 자는 얼마인가?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병들어 죽은 자는 얼마인지? 당시 육십 오만 명 죽었다고 전한다. 나무껍질을 넣은 빵을 씹으며 이 도시를 지켰기에 이 도시를 영웅도시라 한다. 포위망 속에서도 그때 식량이 들어 올 수 있는 루트가 있어서 이 길을 오늘 날도 “생명의 길”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 도시 사람들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의 초연의 연주무대를 도시 전역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참호속의 군인들과 함께 들었다고 한다. 42년 8월 9일의 일이다. 37년도 부터 이곳 음악원 교수로 있던 그는 전쟁이 있자, 방공포 대원으로, 소방요원으로 포탄이 떨어지고 동료가 죽어가는 참호를 누비며 이곡을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곡은 진혼곡으로 불려진다.
이 도시 구석구석에는 아직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시 건물의 파편의 흔적은 그렇다 치고 그 당시 이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 중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 아직 생존하여 있는 이들이 많아 전쟁의 아픔이 큰 도시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땅의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죽어갔는가!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들의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기 전에 한국전쟁을 동의 했으니 아이러니컬하다.
우리에게는 전쟁의 아픔은 있지만 승전의 그런 기쁨이 없었기에 이런 전쟁 승리의 축제 분위기가 낯설다. 러시아에서의 승전 기념일은 그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인지? 아니면 전쟁의 승리 자체에 대한 열광인지, 자랑인지?
나는 이방인으로 멀리 물러 앉아, 이 땅의 사람들이 이 날을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나누는 그런 날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